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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책)

<미야자키 월드> 서평 (창작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by wookule 2021. 2. 21.

  믿고 보는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두 곳이 있다. 바로 픽사와 지브리. 그리고 감독으로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믿고 본다. 평작과 명작의 차이는 디테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디테일을 아는 감독이자 깊은 고민 속에서 나온 그의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작품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힘이 느껴진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 개인적인 감상일 수 있지만 미야자키 작품을 보면 항상 다른 작품들보다 많이 동화되고 몰입이 된다. 그것이 이야기,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비슷한 동양의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감정선이 비슷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런 캐릭터의 힘은 결국 미야자키의 경험에서 나온다. 창작자의 모든 경험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그래서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을 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작품 속에 자신이 모두 들어있다.   

  미야자키는 트라우마보다는 인내의 미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처를 지울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견디는 수밖에 없다. 치유할 방법은 없다." 그는 감정의 상처가 "인간 존재의 기본 요소"이므로 "그저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야자키 감독이 4살쯤 폭격이 떨어진 도시에서 가족이 작은 트럭에 몸을 싣고 탈출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저희 좀 태워주세요!"라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들었는지 부모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착각하는지 몰라도, 같은 마을에 사는 여자가 어린 소녀를 안고 계속 태워달라고 하는 외침을 뒤로하고 트럭이 그대로 가버렸다는 일이 트라우마처럼 자신의 머릿속에 뿌리 박혔다고 책에 나와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기억이 미야자키의 형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트럭은 누군가를 태울 자리가 없었고, 태워달라고 했던 사람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이며 아이를 집에 두고 왔다. 

 

형의 기억이 옳다면 미야자키는 가족이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착각'하고 아이를 안은 엄마를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엄마의 존재나 모성 인물은 많은 미야자키 작품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만, 공습에 관한 그의 기억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은 네 살 아이가 짊어진 책임이다.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능동적인 캐릭터의 매력이다. 닮고 싶은 모습이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4살 때 트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반영해서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캐릭터에게 힘을 넣어주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녀, 소년들은 모두 능동적이고 당차다. 아이들이 옳은 것을 실행하기 위해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런 감정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느꼈던 감정일 것 같다.

 

  미야자키 감독님의 작품 속에서 역경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빛나는 캐릭터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아시타카, <벼랑 위의 포뇨> 포뇨, 이 세명의 캐릭터이다. 특히 나우시카와, 아시타카는 본질을 보는 능력이 있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세상을 구름 끼지 않은 눈으로 봐라" 우리 시대는 거짓과 정보의 홍수 속에 있다. 옳은 것, 바른 것을 구별하고 행하는 힘이 필요한 시기에 어울리는 대사라고 생각된다. 가리어진 거짓을 걷어내고 본질을 볼 줄 아는 나우시카와 아시타카는 정말 멋있는 캐릭터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캐릭터 포뇨. 소스케에 대한 곧은 마음이 참 멋있다. 인터넷에서는 최고의 민폐 캐릭터라는 평도 있었지만 소스케에게 닿기 위해 파도 위를 뛰는 사랑스러운 포뇨를 보면 포뇨의 그 마음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나우시카
아시타카
포뇨와 소스케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둠과 빛 <미야자키 월드>를 읽으며 창작자로서 미야자키 감독님의 삶고 작품에 닮긴 생각들 그 뒷배경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미야자키 감독님의 작품을 모두 좋아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바람이 분다>를 이번에 넷플릭스로 봤다. 책의 인터뷰를 담은 내용에도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바람이 분다>를 보고 나서 이야기해달라고만 답했다고 한다. 이번에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과 전쟁에 대한 감정적인 것을 내려놓고 봤을 때 <바람이 분다>는 어떤 작품인가 생각해보았다. 미야자키가 얘기한 것처럼 호시코리 지로라는 실존인물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는 것에 공감한다. 하늘과 비행기를 사랑하는 소년에게 지로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고 창작자로 자란 미야자키에게 실제 역사에 대한 부담감도 감수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거라 생각된다. 

 

  미야자키가 인정했듯이 스태프들과 가족은 <바람이 분다> 제작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으며, 아마 자신도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시부야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겁"이 나 특정 장면을 삭제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겁쟁이가 아니다. 그는 일본인들이 수십 년 동안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문제들에 대해 논쟁이 일어나길 바랐을 것이다. 그는 시부야에게 일본인들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관했다. "일본인들은 무엇이든 방관하기 일쑤여서 전쟁에 이르게 됐다.(...) 지금도 똑같은 형태를(정부의 평화 헌법 수정) 벌이고 있다.

바람이 분다

  실제로 미야자키는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미움을 받았다. 정반대의 시선으로 거장이라고 칭송받던 감독이 한 작품으로 정반대의 견해로 두 나라에서 미움을 받았다. 미야자키는 어느 정도 예상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작품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보다 반발이 더 거셌다.

 

  역사적인 사실을 배제하고 보려고 노력하면서도 한국사람으로서 보는 내내 불쑥 감정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바람이 분다>를 참 좋아했을 것 같다. 꿈을 가진 사람이 그것에 닿으려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환. 특히 미야자키 감독님의 어머님, 그리고 다양한 작품 곧곧에서 등장하는 결핵. 결핵에 걸린 나호코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병원을 몰래 나와 지로에게 가는 그 마음이 애틋했다. 아름다운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에 자꾸 감상이 뒤섞인다. 한국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마음인가 보다.

  <바람이 분다>에서 미야자키는 전작들에서도 다뤘던 질문을 새롭고 더 도전적인 방식으로 던진다. 기술을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공상과학과 판타지 장르인 <나우시카>,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는 이 문제와 안전거리를 뒀다. 한편 <바람이 분다>는 기술 발전이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 직전에 역사가 멈추는 새로운 장르의 판타지다. 이런 판타지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안전거리를 둘 수 없다. 제로센이 위대한 기술적 성취인 동시에 수많은 죽음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그저 불편한 진실이 아니다. 미야자키는 "역사에 압도"됐다고 말한다. 자신의 애니메이션 역시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미야자키 월드>를 읽으며 생각했다. 창작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2018년 발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누다 질문을 받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곰곰이 생각해보다 한 단어로 정리되었다. "경험"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성장한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했다고 똑같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창작자로서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세대로서 미야자키 감독님과 故박완서 선생님이 생각났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그 경험을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에 담은 두 거장을 떠올리며 경험과 사랑을 담은 창작자가 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