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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책)

<결혼학개론> 우리의 끝 없는 대화...

by wookule 2021. 2. 6.

  예전에는 이상형이라는 게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예술을 좋아하는 등등 이런저런 이상형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저런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이것만은 꼭 있어야 한다 하는 것은 정리가 되었다.  '관계에 대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소한 것에 대해 도란도란 담소 나눌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 소울 메이트는 영화에나 있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계속 대화하며 상대를 새로 알아가며 맞춰가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쪽의 역할이 아닌 공통의 역할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니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기 전에 이 책 <결혼학개론>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해피엔딩인 이유는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곳은 현실이고, 결혼은 정말 현실이다. 환상을 걷어내고 이제 현실을 보자.

 

 

우리는 배우자를 변화시킬 수 없다. 사실 그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미칠 듯 화가 나는 이유는 원래 그 상대에게서 좋아했던 점들과 관련이 있다. 배우자의 몸매가 훌륭한가? 나중에는 그가 혹은 그녀가 운동에 쏟는 시간에 질리게 될 것이다. 외모가 멋진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내 배우자에게 보내는 관심 때문에 괴로워진다.

  참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 싫어지는 순간이 확실히 온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아니, 이것이 이겨내야 할 문제인가? 우리는 배우자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쉽게 변화시킬 수 도 없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배우자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지 나의 영역은 아니다.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던 부분이 싫어지는 것은 지극히 나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혹시 다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엉뚱한 것을 꼬투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 관계란 참 복잡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문제 일 때도 있다. 그 요인이 단순한 연인 관계보다는 결혼 관계에서 훨씬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결국 둘이 해결해 나가야 하는 관계이니 누구보다도 나의 파트너와의 믿음이 중요하다 생각된다.

 

  결국 우리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싸우고 협상하는 과정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래야 결혼 생활의 진짜 재미있는 부분들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건설적인 싸움의 비결은 상대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면서 싸우는 것이다. 또한 역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했던 사람이 갑자기 내게 위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탯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먼저 서로를 보호해주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믿음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건강한 관계에서 다툼은 당연한 것이고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 싸움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한 방향의 싸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 싸움은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민감한 사항일수록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일수다. 특히 가족문제는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샤우나 샤피로 박사님의 책 <마음챙김>, 그리고 이 책 <결혼학개론>을 배우자와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똑똑한 싸움을 해야 한다. 내 감정을 모두 쏟아 낸다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명확히 판단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나'혼자 하는 것이 아닌 배우자와 팀이 되어서 '함께'해야 한다. 

 

교황과 결혼한 경우가 아니라면 곧바로 용서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상대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용서할지 말지는 상대가 정할 문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참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강요가되면 그만큼 나쁜 것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한다. 한국사람들은 특히나 다른 표현보다도 사과에 대한 표현이 정말 서투른 것 같다. 사과는 겸연쩍다고 어리광 부리듯 대충 해서 넘어가는 게 아니다. "이 정도 했으니 대충 넘어가자"라는 말은 정말 분노 폭발 스위치 같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저런 대사가 나오면 '아 더 싸우겠네'하는 생각이 든다. 용서는 내가 아닌 상대가 정할 문제라는 걸 잊지 말자.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학교에 가는 일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대학에 가는 것과 같다. 나에게 달린일이다. 아이를 배우자처럼 믿고 의지하는 것은 마약 중독자에게 내 귀중품을 맡겨두고 의지하는 것과 같다. 팀 켈러는 배우자보다 자녀를 더 중시하는 것이 언제나 가족을 망치는 길이라고 말한다.

   위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물론 보살핌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독립한다. 그리고 아이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학습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최고의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냥 꽁냥꽁냥함을 보여주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심지어 싸우는 것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보여주면 아이는 싸우는 모습을 보아도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거울처럼 그 아이에게도 나타날 것이고 그런 결혼 생활을 꿈꾸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결혼은 민감한 문제다. 그리고 한국의 결혼 문화는 또 다른 점들이 있다. 혼자 살 때와 결혼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는 완전히 다르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것이 결국 혼자가 아닌 함께 해결해나가야할 문제들이라는 걸 생각하고 나니 관계를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결혼은 역시 어렵고 복잡한 일이지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기대되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혼자 사는 것도 좋은 시대이다.